2025. 11. 30. 21:17ㆍ에세이
아이를 강물에 띄워야 했던 어머니
성경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출애굽기 2장을 말하고 싶다.
한 어머니가 갓 태어난 아들을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운다. 역청을 발라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고, 갈대 사이에 조심스럽게 놓는다. 그리고 돌아선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요게벳이다.

요게벳은 누구인가
요게벳(יוֹכֶבֶד)은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영광이시다"라는 뜻이다. 레위 지파의 여인으로, 아므람과 결혼하여 미리암, 아론, 모세를 낳았다.
성경에서 요게벳의 이름이 직접 등장하는 곳은 단 두 군데뿐이다.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출애굽기 6:20)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민수기 26:59)
이름은 두 번뿐이지만, 그녀가 한 일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바꿔놓았다.
죽음의 명령 앞에서
요게벳이 모세를 낳았을 때, 애굽에는 끔찍한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출애굽기 1:22)
히브리 민족이 너무 번성하자, 바로는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어머니가 제 손으로 제 아이를 강물에 던져야 하는 시대였다.
요게벳은 아들을 낳았다. 죽여야 하는 아들을.
그러나 그녀는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겨 키웠다. 아이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누군가 발견할까, 매일이 두려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갈대 상자에 담긴 믿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때, 요게벳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녀는 갈대 상자를 만들었다. 역청과 나무 진을 발라 물이 들어오지 않게 했다. 악어가 갈대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갈대 사이에 상자를 두었다.
그리고 아이를 놓아주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히브리서 11:23)
유모가 된 어머니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바로의 딸이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했다. 아이가 울고 있었다. 히브리 아이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겨 거두기로 했다.
이때 멀리서 지켜보던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다가와 말했다.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출애굽기 2:7)
바로의 딸이 허락하자, 미리암은 자기 어머니 요게벳을 데려왔다.
요게벳은 자기 아들의 유모가 되었다.
어머니이면서 어머니가 아닌 삶. 제 아이를 키우면서도 "어머니"라 불리지 못하는 삶. 아이의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하고, 바로의 딸이 지어준 "모세"라는 이름을 불러야 했다.
그러나 요게벳에게는 시간이 주어졌다. 모세가 젖을 뗄 때까지, 아마 서너 해 동안 함께할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요게벳은 모세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어머니가 심은 씨앗
모세는 바로의 궁에서 자랐다.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우고, 왕자로서의 삶을 누렸다.
그러나 장성했을 때, 모세는 선택했다.
"믿음으로 모세는 성장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브리서 11:24-25)
애굽 궁전의 부귀영화보다 자기 민족의 고난을 택했다. 어디서 이런 정체성이 왔을까.
요게벳이 유모로서 함께한 그 짧은 시간, 그녀가 아들에게 심어준 믿음의 씨앗이 평생을 이끈 것이다.
떠나보냄에 대하여
요게벳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요게벳은 죽음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떠나보냈다. 그리고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 유모라는 이름으로나마 아이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런 기적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를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지 못한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를 지킬 수 없어서 놓아준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앞에서 무너진다.
요게벳의 이름은 "여호와는 영광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이를 강물에 띄우던 그 순간, 그녀에게 영광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두려움과 고통뿐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이를 하나님께 맡겼다.
결과를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살지 죽을지, 누가 발견할지,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맡겼다.
요게벳의 노래
CCM 작곡가 염평안은 요게벳의 시선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작은 갈대상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네 /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노래는 아이를 강물에 띄우며 주저앉아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하는 그 장면을.
그리고 노래의 후렴은 이렇게 흐른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이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생물학적 부모가 떠나보낸 아이에게도, 참 부모이신 분이 계신다는 고백. 강물에 흔들흔들 떠내려가는 상자 안의 아이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믿음.
"그가 널 구원하시리 / 그가 널 이끄시리라 / 그가 널 사용하시리 / 그가 너를 인도하시리"
요게벳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띄워 보낸 아이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이끌어낼 지도자가 될 줄은. 200만 명을 애굽에서 해방시킬 줄은.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어머니를 위한 변호
나는 요게벳의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의 모든 "떠나보낸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놓아주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을 것이다. 누군가는 평생 그 선택을 후회하며 살았을 것이다.
성경은 요게벳의 믿음을 칭찬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고통도 함께 기억하고 싶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은 어머니에게 평생의 상처가 된다.
요게벳은 아이를 떠나보냈지만, 다시 만났다. 모든 어머니가 그런 기적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여전히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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