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가 귀해진 시대

2025. 11. 28. 18:47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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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보하'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 특별한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를 소중히 여기자는 뜻이래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저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시설에서 자랐습니다. 내 생일이 언제인지, 내 나이가 정확히 몇인지도 불확실했어요. 서류에 적힌 숫자와 실제가 달랐고, 그걸 확인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보통'이라는 건 사치였어요.

아침에 눈 뜨면 오늘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고, 내일이 어떨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겐 당연한 것들 — 엄마가 차려주는 밥, 아빠와 나누는 대화, 형제와의 다툼까지도 — 저에겐 없는 것들이었죠.


그래서일까요.

지금 저는 아무 일 없는 하루가 감사합니다.

아내와 마주 앉아 밥 먹는 시간.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다녀왔어요" 하는 그 한마디. 저녁에 조용히 글 쓰는 시간.

남들은 대단한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저에게 행복은 이런 것들입니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 당연하지 않았기에 당연한 게 소중한 것.


요즘 사람들이 '무해한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푸바오 같은 동물, 귀여운 캐릭터, 작은 인형 키링... 해롭지 않은 존재들에게서 위로받는다고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그냥 귀여운 것.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그냥 순수한 것. 그런 게 필요해진 거겠죠.

저도 그 마음을 압니다.

시설에서 자랄 때, 가끔 교회 분들이 오셨어요. 찬송가 부르고, 작은 선물 주고 가시는. 그분들은 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냥 와서 노래하고, 웃어주고, 가셨어요.

그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호의가 세상에 있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2025년 트렌드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평범한 하루를 소중히 여기게 됐다는 건, 어쩌면 그만큼 세상이 힘들어졌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지혜로워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화려한 성공이나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오늘 하루 무탈했음에 감사하는 마음. 작고 귀여운 것에서 위안을 찾는 마음. 그게 어리석은 게 아니라 삶의 본질에 가까워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34)

오늘 하루를 살면 됩니다.
오늘 주어진 평범함에 감사하면 됩니다.

그게 아보하의 진짜 의미 아닐까요.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특별한 일이 없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하루입니다.

무탈한 하루를 보내셨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평범한 하루가 귀해진 시대.

그 귀함을 아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건, 어쩌면 희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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