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9. 15:39ㆍ에세이
10년 전만 해도 엄마 얼굴이 살짝살짝 보였다. 지금은 실루엣마저 흐릿해진다.
엄마와 헤어지기 전, 나는 아마 세 살 전후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흐려진 엄마의 실루엣과 선풍기뿐이다.
그리고 오른쪽 새끼손가락 하나.
이 조각들을 맞춰보면, 아마 이런 일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성용이 잠에서 깼다.
엄마는 보이지 않고, 신기한 선풍기가 돌고 있었을 것이다. 윙윙거리며 고개를 돌리는 그것이 신기했을 것이다. 성용은 선풍기를 향해 기어갔고, 돌고 있는 날개 사이로 손을 넣었을 것이다.
새끼손가락에서 피가 흘렀을 것이다.
아들의 우는 소리에 거실에 있던 엄마가 달려왔을 것이다. 피가 철철 흐르는 작은 손을 감싸 쥐고, 아들을 등에 업고 병원으로 뛰었을 것이다.
그렇게 통원 치료를 받던 중, 의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이 아이는 뇌성마비입니다.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게 될 겁니다."
뇌성마비.
의학적으로 뇌성마비는 미성숙한 뇌에 발생한 비진행성 손상으로 인해 운동과 자세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원인은 다양하다. 출생 전 태내에서 발생하는 산전 인자, 출생 시 발생하는 주산기 인자, 출생 후 발생하는 산후 인자가 있으며, 약 20%는 원인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산전 인자로는 유전적 요인, 선천적 기형, 임신 중 감염이나 약물 노출 등이 있고, 주산기 인자로는 저산소증이나 핵황달 등이 있다. 산후 인자로는 두부 외상, 뇌염, 뇌막염 같은 감염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중증이 아닌 경우 2~3세가 될 때까지 진단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손가락을 다쳐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엄마는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엄마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밤새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성용과의 이별을 택했다.
이것은 내 추론이다. 흐릿한 기억 조각과 몸에 남은 흔적으로 그려본 그날의 풍경.
나는 오른손잡이다. 많이 쓰는 손이 더 자란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 두 팔 길이를 재면 오른쪽이 더 길다.
그런데, 두 새끼손가락의 길이를 재면 오른쪽이 더 짧다.
세 살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자라지 않는 오른쪽 새끼손가락.
다른 손가락들은 세월과 함께 자랐지만, 이 새끼손가락만은 그때 그 순간에 멈춰 있다. 마치 그 시절의 나를 잊지 말라는 듯이. 마치 엄마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갔을지도 모를 그날을, 기억하라는 듯이.
엄마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지만, 이 새끼손가락은 여전히 선명하게 그날을 말해준다.
나는 그래서 이 새끼손가락을 미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가진, 엄마와의 유일한 연결고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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