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이 경수에게

2026. 4. 4. 16:52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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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이 경수에게


인생 한 줌 살았다 꽃이 되고 싶었다 피우기도 전에 밟혔다

아파도 울지 못하는 삶 수많은 넘어짐은 나를 단련시킨 밑걸음

사랑, 있었지만 없었다 이 마음을 품어주는 동굴 오직 그곳이 천국

외로운 고아에 명절 아침 건더기 없는 미역국에 고독에 꽁보리밥 말아 먹고 TV를 벗 삼아 청춘을 지났다

말 없는 고아 청년에게도 배움의 장이 열렸다 바보라고 알고 있었다 바보가 천재였다

이름도 나이도 엄마, 아빠도 도둑맞아 바보로 살던 청년에게도 사랑이 소복소복 싹튼다 함께 있으면 따뜻함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자립을 만났다 사랑도 만났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새신랑은 그동안 못 해본 것들을 만났다


'경수'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나의 원래 이름은 '안성용'이다.

중증 장애로 아프고 고된 삶을 걸어왔다. 어렵고 힘든 30년의 시설 생활을 광야를 지나는 과정으로 여기며, 지금은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아내와, 선물로 주신 딸아이와 함께 남 부럽지 않게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덧 내 나이도 오십이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어느새 늙은 아저씨다. 어린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라는 소리도 듣는다.

아직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어릴 적 선배 형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 이따금 두려움이 스친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정말 잘 살아왔어, 경수. 넌 죽음의 문턱을 몇 번씩이나 넘나들었어.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게 기적이야.


경사스러울 경(慶), 지킬 수(守). 경사를 지키는 사람.

누가 지어줬는지도 모를 이름이,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있을까.

처음 들어간 시설, 소아영아재활원의 원장 수녀님 성이 '조'였다. 그 성을 받아 '조경수'가 되었다. 이름도, 성도, 모두 누군가 건네준 것들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 그 이름 안에 삶 전체가 담겨 있었다.

아프고 긴 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그는 기어이 경사를 지켜냈다. 사랑을, 가정을, 삶을.

'안성용'으로 태어났지만, '조경수'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경사를 지키는 사람으로.

지금 네가 쓰고 있는 그 이름의 힘도 있는 것 같아.

그 말이 이제는 그냥 위로가 아니다. 진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성용이 경수에게 — 잘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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