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6. 21:10ㆍ장애에 대해서
백신이 지워버린 공포의 기억 – 소아마비 이야기
철제 통 속의 72년
2024년 3월, 미국 텍사스에서 한 남성이 세상을 떠났다. 폴 알렉산더, 향년 78세. 그는 72년 동안 '철의 폐(Iron Lung)'라 불리는 거대한 철제 원통 속에서 살았다. 머리만 밖으로 내민 채, 기계가 만들어내는 리드미컬한 펌프 소리에 맞춰 숨을 쉬며.
1952년, 여섯 살이던 폴은 소아마비에 걸렸다. 바이러스가 그의 척수를 공격해 전신 근육을 마비시켰고, 스스로 숨 쉴 수 있는 능력마저 앗아갔다. 당시 미국에서만 6만 명 이상이 소아마비에 감염됐고, 병원마다 아이들이 들어간 철제 원통이 줄지어 늘어섰다.
폴은 그 철제 통 속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입에 펜을 물고 8년에 걸쳐 자서전을 썼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법정에도 섰다.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소아마비 백신을 맞으세요. 저처럼 되지 않도록."

소아마비란 무엇인가
소아마비(小兒痲痺), 영어로는 폴리오(Polio)라 불리는 이 질병은 폴리오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급성 감염병이다. '소아마비'라는 이름은 주로 5세 이하 어린이에게 발생했기 때문에 붙었지만, 성인도 걸릴 수 있다. 성인이 감염되면 오히려 증상이 더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폴리오바이러스는 장(腸)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주로 감염자의 대변이나 침에 오염된 물과 음식을 통해 전파된다. 잠복기는 보통 7~14일. 입을 통해 들어온 바이러스는 소장에서 증식한 뒤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감염되었다고 모두 마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약 70%는 아무 증상 없이 지나가고, 25%는 발열, 두통, 인후통 같은 감기 비슷한 증상만 겪다 회복된다. 문제는 나머지다. 약 1~5%에서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 특히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를 공격한다. 이때 그 신경이 지배하던 근육이 마비되는데, 주로 다리 근육이 침범당하지만 팔, 목, 횡격막까지 마비되면 스스로 숨 쉴 수 없게 된다.
마비형 소아마비 환자 중 2~5%의 어린이, 15~30%의 성인이 사망한다. 살아남더라도 마비된 근육은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리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해 한쪽이 짧아지거나, 평생 보조기구에 의존해야 하는 후유증이 남는다.
한 학급에 한두 명은 있었다
1960년대 한국.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한 학급에 60명 중 한두 명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아이가 있었다"고.
한국에서 소아마비는 낯선 질병이 아니었다. 1950년대까지 매년 약 2,000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백신이 없던 시절, 여름만 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수영장이나 사람 많은 곳에 보내지 않으려 했다. 바이러스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1962년, 한국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환자 수는 연간 200명 수준으로 급감했고, 1970년대에는 한 자릿수로 줄었다. 1983년, 5명의 환자가 보고된 것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소아마비 신규 환자는 사라졌다.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소아마비 박멸을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사라졌다고 후유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백신 보급 이전에 소아마비를 앓았던 사람들, 지금의 50대 후반에서 70대는 여전히 그 흔적을 안고 산다. 거리에서 가끔 마주치는,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중년 이상의 분들. 그분들 중 상당수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사람들이다.
철의 폐, 공포의 상징
소아마비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호흡 마비 때문이었다. 바이러스가 횡격막을 움직이는 신경을 공격하면 스스로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1928년,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의 폐(Iron Lung)'를 개발했다.
작은 자동차 크기의 철제 원통에 환자를 눕히고 머리만 밖으로 내놓는다. 원통 안의 기압을 낮추면 환자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며 폐로 공기가 들어가고, 기압을 높이면 가슴이 수축하며 공기가 나간다. 횡격막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다.
1940~50년대 미국 병원의 소아마비 병동에는 이 철제 원통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미국에서만 약 1,000대, 영국에서 700대가 사용됐다. 대부분의 환자는 몇 주간 철의 폐 속에서 지내다가 회복되었지만, 폴 알렉산더처럼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1960년대 이후 현대적인 양압 인공호흡기가 개발되면서 철의 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2024년 폴 알렉산더가 사망한 후에도, 미국에는 여전히 철의 폐에 의존해 사는 사람이 한 명 남아 있다. 마사 릴라드라는 여성이다.
후소아마비 증후군: 수십 년 뒤 찾아오는 그림자
소아마비를 이겨내고 정상적인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수십 년 뒤 찾아오는 복병이 있다. '후소아마비 증후군(Post-Polio Syndrome, PPS)'이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사람 중 25~40%가 15~40년이 지난 뒤 새로운 증상을 경험한다. 피로감, 근육통, 관절통, 그리고 예전에 마비됐던 부위나 그렇지 않았던 부위에서 새로운 근력 약화가 나타난다. 삼키거나 호흡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력한 가설은 이렇다. 소아마비 당시 일부 신경세포가 죽고 살아남은 신경세포가 그 역할까지 떠맡았다. 수십 년간 과부하에 시달린 신경세포가 결국 지쳐 기능을 잃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행히 후소아마비 증후군은 전염성이 없고,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이미 장애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증상이 찾아온다는 것은 큰 심리적 충격이다. 어린 시절 겪었던 공포가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이끈 대통령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FDR).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한 대통령이자,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두 차례의 국난을 이끈 지도자다. 그가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1921년 여름, 별장에서 찬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 루스벨트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정치인으로서 치명적인 일이었다. 당시 사회에서 장애인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철제 보조기를 다리에 차고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며 짧은 거리를 걷는 연습을 반복했다. 휠체어를 타는 모습이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썼다. 당시 언론도 그의 장애를 부각하는 보도를 자제했다.
193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할 때, 루스벨트는 휠체어가 아닌 두 발로 단상에 올랐다. 아들의 팔에 의지한 채였지만, 그 모습은 대공황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소아마비와 싸웠다. 1938년 '소아마비 국립재단'을 설립해 백신 개발을 주도했다. 이 재단의 모금 캠페인 '다임의 행진(March of Dimes)'은 수천만 명의 미국인이 10센트 동전(다임)을 기부하는 국민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물이 1955년 조너스 소크 박사의 소아마비 백신이다.
루스벨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4개월 앞두고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의 휠체어는 지금도 미국 국립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의 극복 사례들
소아마비를 딛고 일어선 이들은 한국에도 많다.
스티븐 스털링은 1960년 다섯 살 때 홀트복지타운에 맡겨진 소아마비 장애 소년이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그는 코넬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으로 졸업하고, 세계 14위 규모의 비영리단체 MAP인터내셔널의 CEO가 되었다. 매년 1,400만 명에게 의약품을 지원하는 이 단체를 이끌며 그는 말한다. "한국에서 저는 그저 '소아마비 피해자'였습니다. 하지만 입양을 통해 저는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송이호 선생은 생후 11개월에 소아마비에 걸려 1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전동 스쿠터를 타고 경기도 파주의 특수학교 새얼학교에서 20년째 지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매일 하는 말이 있다. "두려워하지 마." 2019년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을 수상했다.
백동진 한의사는 생후 10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아 1급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어머니가 9년간 업고 등하교시켜 개근상을 받았고, 국내 최초로 1급 장애인 한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호(號)는 '신천(信天)', 하늘이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뜻이다.
백신, 인류가 만들어낸 기적
1955년 조너스 소크 박사가 사백신을, 1961년 앨버트 세이빈 박사가 경구용 생백신을 개발하면서 소아마비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소크 박사는 백신의 특허를 내지 않았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수 있나요?"라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1988년 전 세계에서 35만 명이 소아마비에 걸렸다. 2018년에는 33명으로 줄었다. 99% 이상 감소한 것이다. 현재 소아마비가 남아 있는 나라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단 두 곳뿐이다. 인류는 천연두에 이어 두 번째로 전염병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앨 문턱에 서 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최근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믿고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2022년 미국 뉴욕에서는 수십 년 만에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젊은 성인이었다.
잊혀진 공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지금 20~30대는 소아마비를 모른다. 교과서에서 '과거에 있었던 질병'으로 배웠을 뿐, 실제로 그 공포를 경험한 적이 없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여름이면 부모들은 아이가 열이 나고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철의 폐 속에서 72년을 산 폴 알렉산더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소아마비 백신을 맞으세요."
백신이 만들어낸 기적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 기적은 수많은 환자의 고통과 과학자들의 헌신, 그리고 모금함에 10센트씩 넣었던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거리에서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어르신을 만나면, 그분이 어떤 시대를 통과해왔는지 생각해보자. 그분들은 백신이 없던 시대의 생존자다. 그리고 그분들이 겪은 일을 우리 아이들은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백신이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소아마비는 현재 한국에서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 질환입니다. 생후 2개월부터 총 4회 접종하며, 보건소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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