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 특집] 현대판 스쿠루지 - 마지막 크리스마스 5

2025. 12. 20. 14:03소설

반응형
SMALL

🎄 [성탄 특집] 현대판 스쿠루지 - 마지막 크리스마스

제5장. 세 번째 영혼: 미래의 그림자


성준이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황석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 거리는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반짝였다. 예전에는 그것이 낭비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왜인지 아름다워 보였다.

'영철아... 너 덕분이야.'

친구의 마지막 선물. 그것은 돈도, 물건도 아니었다. 깨달음이었다.

택시가 성준이네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송파구의 중형 아파트. 성진그룹 회장의 아들 치고는 소박한 집이었다.

황석진이 아파트 로비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황석진."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 않은, 낮고 무거운 목소리.

"누구야?"

어둠 속에서 형체가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죽음 그 자체 같았다.

"나는 미래의 영혼이다."

"미래...?"

"네가 어떻게 죽을지, 죽은 후에 무엇이 남을지... 그것을 보여주러 왔다."

황석진은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보여줘."

검은 형체가 손을 뻗었다. 황석진이 그 손에 닿자 세상이 다시 빙글 돌았다.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었다.

병원 같았다. 중환자실의 침대 위에 노인이 누워 있었다. 수많은 기계에 연결된, 의식 없는 노인.

황석진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자신이었다. 몇 년 후의 자신.

"이게..."

"네가 변하지 않았을 때의 미래다."

검은 영혼이 말했다.

"2년 후, 너는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혼자 집에서. 가정부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황석진은 미래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기계에 의지해 숨만 쉬고 있는 그 모습.

"가족은... 어디 있어?"

"아들은 오지 않았다. 네가 평생 거부한 만큼, 아들도 포기했다."

"민서랑 민준이는...?"

"손주들은 할아버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까."

황석진의 심장이 조여왔다.


장면이 바뀌었다.

장례식장이었다. '故 황석진 회장 영결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빈소는 휑했다. 성진그룹의 관계자 몇몇, 비서실 직원들... 그것뿐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다 어디 있어? 직원이 몇 천 명인데..."

"의무 조문만 왔다 갔다." 검은 영혼이 말했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너는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뿐이니까."

황석진은 빈소를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 아들 성준이 앉아 있었다. 옆에는 며느리와 두 손주.

"성준이가 왔네..."

"아들은 착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봐라. 저 표정을."

성준의 얼굴에는 슬픔이 없었다. 그저 공허함, 혹은 해방감 같은 것만 있었다.

손녀 민서가 물었다.

"아빠, 할아버지가 누구야?"

"아빠 아버지셔."

"그런데 왜 우리 한 번도 안 봤어?"

성준이 대답하지 못했다.

황석진은 그 장면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내 미래야?"

"변하지 않았을 때의 미래다."

"변하지 않았을 때...?"

검은 영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네가 선택하는 대로 바뀐다."

"그럼... 내가 변하면?"

"보여주마."


장면이 다시 바뀌었다.

같은 병원, 같은 중환자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침대 곁에 사람들이 있었다. 아들 성준, 며느리, 손녀 민서, 손자 민준. 그리고 그 뒤로 여러 사람들.

황석진... 미래의 황석진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의식이 있었다. 눈을 뜨고,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손녀 민서가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미래의 황석진이 힘겹게 웃었다.

"괜찮아... 민서가 와줘서... 할아버지 안 아파."

"할아버지, 나 피아노 더 잘 치게 됐어요. 다음에 들려줄게요."

"그래... 꼭 들을게..."

손자 민준이가 말했다.

"할아버지, 저 축구 시합에서 골 넣었어요. 할아버지 덕분이에요. 축구화 사줘서."

"그래... 잘했다, 민준아..."

아들 성준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많이 힘드시죠?"

"아냐... 이렇게 다 곁에 있으니까... 힘들지 않아."

"아버지, 고맙습니다."

"뭐가..."

"5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와 주셔서. 그때부터 아버지가 변하셔서... 저도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어요."


황석진은 그 장면을 보며 눈물이 흘렀다.

5년 후. 달라진 미래.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자신.

"그리고..." 성준이 말을 이었다. "성진그룹 직원들이 아버지 병문안 오고 싶다고... 줄 서 있어요. 아버지가 복지 개선하시고, 직원들 대우 좋게 해주셔서... 다들 감사하대요."

미래의 황석진이 힘없이 웃었다.

"그래...? 고마운 일이네."

"회장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영철의 딸 민정이었다.

"민정 씨..."

"회장님, 괜찮으세요? 저희 재단에서 다들 걱정하고 있어요."

미래의 황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철이 이름으로 만든 재단... 잘 되고 있어?"

"네. 올해 천 명 넘는 학생들한테 장학금 줬어요. 다 회장님 덕분이에요."

"영철이 덕분이지... 그 친구가 나를 바꿔줬으니까."


황석진은 그 장면을 보며 울고 있었다.

'저렇게 될 수 있어... 내가... 저렇게 될 수 있어...'

검은 영혼이 물었다.

"어떤 미래를 원하느냐?"

"이 미래... 이 미래를 원해."

"그러면 선택해라. 지금 이 순간부터."


황석진은 다시 아파트 로비에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췄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알았다. 지금 본 것들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도, 정희도, 영철도, 그리고 검은 영혼도... 모두 진짜였다는 것을.

엘리베이터를 탔다. 7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복도를 걸었다. 703호. 아들의 집.

초인종을 누르기 전, 황석진은 잠시 멈췄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평생 닫아왔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쉬워. 그냥... 미안하다고 해. 사랑한다고 해. 그거면 돼.'

황석진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성준이 서 있었다. 그 뒤로 며느리와 손주들이 보였다.

"아버지..."

"성준아."

황석진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마흔다섯이 된 아들. 어느새 자신보다 키가 커버린 아들.

"성준아, 나..."

말이 막혔다. 평생 하지 않던 말이 목에 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삼키지 않았다. 뱉어냈다.

"미안하다."

"..."

"니 어린 시절... 아빠가 곁에 없었어. 엄마한테도 그랬고. 손주들한테도... 못난 할아버지였어."

"아버지..."

"나 너무 늦게 깨달았다. 뭐가 중요한 건지. 뭐가 진짜 부자인 건지. 영철이가... 죽으면서 알려줬어."

"영철 아저씨가요...?"

"그래. 오늘 돌아가셨어. 내 유일한 친구가."

황석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성준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근데 그 친구가 말해줬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지금이라도 가족한테 돌아가라고."

"아버지..."

"성준아, 나 이제부터 달라질게. 약속해. 많이 부족하겠지만... 노력할게. 그러니까..."

황석진은 손을 내밀었다.

"나한테 기회를 줘.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다시 시작할 기회를."

성준은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았다. 주름지고, 나이 들고, 떨리는 그 손.

그리고 그 손을 잡았다.

"아버지, 들어오세요."

"..."

"크리스마스 이브잖아요. 가족이 같이 있어야죠."


황석진은 아들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다!"

손녀 민서가 달려왔다.

"할아버지, 진짜 오셨어요!"

"민서야..."

황석진은 손녀를 안았다. 작고 따뜻한 몸. 생명의 온기.

손자 민준이도 달려왔다.

"할아버지, 나 축구 잘해요! 다음에 경기 보러 와요!"

"그래, 꼭 갈게..."

며느리가 다가왔다.

"아버님, 어서 오세요. 저녁 같이 드시죠."

"고맙다..."

식탁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성이 담긴 음식들. 김치찌개, 불고기, 잡채, 그리고 케이크.

황석진은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밥을 먹었다.

성준이 물었다.

"아버지,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갑자기 오신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었지. 많은 일이. 근데...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부터가 중요해."

"네?"

"성준아, 내년부터 회사 복지 정책 바꾸려고 해. 자네 의견 좀 들어도 될까?"

성준이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제 의견을요?"

"그래. 자네 사회적 기업 하면서 배운 거 많잖아. 그거 성진그룹에도 적용하고 싶어."

"아버지..."

"늦었지만, 이제라도 바꾸고 싶어. 돈만 버는 회사 말고... 직원들도 행복한 회사로."

성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황석진은 아들의 손을 잡았다.

"고마운 건 나야. 아직 나를 가족으로 받아줘서."


[계속: 제6장. 새벽이 오기 전]


© 2025 현대판 스쿠루지 - 마지막 크리스마스 | 원작: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롤'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