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 특집] 현대판 스쿠루지 - 마지막 크리스마스 3

2025. 12. 19. 13:10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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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 특집] 현대판 스쿠루지 - 마지막 크리스마스

제3장. 두 번째 영혼: 현재의 그림자


황석진은 그 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가, 창밖의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올 때쯤 일어났다.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았다.

일흔두 살의 노인이 거울 속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깊게 패인 주름, 날카로운 눈빛, 굳게 다문 입술. 언제부터 이렇게 늙었을까. 언제부터 이런 얼굴이 되었을까.

"회장님, 아침 드시러 안 내려오세요?"

가정부 오순희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갈게."

아침 식사는 평소와 같았다. 현미밥에 된장찌개, 반찬 몇 가지. 건강을 생각해서 담백하게.

"회장님,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저녁은 어떻게 하실...?"

"평소대로 해."

"네, 알겠습니다."

오순희 씨가 물러나자 황석진은 혼자 밥을 먹었다. 넓은 식탁에 혼자 앉아 먹는 밥. 오 년 전 아내가 떠나고 나서 줄곧 이랬다.

아니,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있었을 때도, 아들이 있었을 때도, 이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었다. 늘 바빴다. 늘 일이 있었다. 가족은... 나중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그 '나중'은 영영 오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비서실장 김정태였다.

"회장님, 긴급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아까 발표한 인원 감축 계획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심합니다. 노조에서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고, 언론에서도 취재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장님, 재고해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적어도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발표를 미루면..."

"안 돼." 황석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밀어붙여. 반발은 항상 있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져."

"하지만..."

"김 실장, 자네도 이 바닥에서 이십 년 넘게 있었으면서 그것도 몰라? 약한 모습 보이면 끝이야. 그냥 밀어붙이면 돼."

"...알겠습니다, 회장님."

전화를 끊고 황석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피곤할까. 옛날에는 이 정도 일에 끄떡도 안 했는데.

'늙었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그리고 한쪽 구석에 놓인 오래된 나무 상자.

황석진은 그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낡은 사진첩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사진들. 어머니와 찍은 사진, 영철이와 찍은 사진, 아내 정희와의 결혼식 사진, 아들 성준이의 돌잔치 사진...

언제부턴가 이 사진첩을 열어보지 않았다. 열면 아프니까. 후회하니까.

"정희야..."

황석진은 아내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결혼식 날의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스물세 살, 활짝 웃는 신부. 그녀는 황석진을 사랑했다. 진심으로.

그런데 그는 뭘 했을까. 아내에게.

일만 했다. 돈만 벌었다. 아내가 외로워할 때 곁에 없었고, 아내가 아플 때도 곁에 없었다. 아내의 마지막 순간, 그제야 병원에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여보..."

정희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여보... 다음 생에서는... 우리 더 많이 손잡고 다녀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황석진은 그제야 울었다. 평생 울지 않던 사람이, 그날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

'다음 생...'

황석진은 비웃었다. 다음 생 따위가 어디 있어. 이 세상 한 번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들고 지친데.


그때였다.

서재의 불이 갑자기 꺼졌다.

"뭐야..."

황석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만이 희미하게 서재를 비추고 있었다.

"황석진."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황석진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누... 누구야!"

"나야."

어둠 속에서 형체가 나타났다. 중년의 여자였다. 단정한 한복을 입은, 고운 얼굴의...

"정희...?"

황석진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내였다. 오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정희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여보..."

"석진 씨."

정희의 목소리는 생전 그대로였다. 다정하고, 부드럽고, 약간은 슬픈.

"이게... 어떻게... 당신은 죽..."

"그래요. 난 죽었어요."

정희가 다가왔다.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늘 밤, 당신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왔어요."

"보여줄 것...?"

"지금의 당신. 당신이 만든 세상. 당신이 남긴 것들."

정희가 손을 내밀었다. 황석진은 그 손을 잡았다. 차갑지 않았다. 생전처럼 따뜻했다.

그리고 세상이 빙글 돌았다.


눈을 떠보니 낯선 곳이었다.

아니, 낯설지는 않았다. 성진그룹 본사. 하지만 회장실이 아니라 일반 사무실이었다.

"여기는..."

"당신 회사의 10층 영업부예요."

정희가 말했다. 사무실에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황석진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 사람들..."

"우리를 볼 수 없어요. 우리는 그림자 같은 존재니까."

황석진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직원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웃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한 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여보... 아니, 오늘도 늦을 것 같아. 응... 미안해. 민아한테 아빠가 미안하다고..."

목소리가 떨렸다. 전화를 끊은 그의 눈가가 촉촉했다.

옆자리 동료가 물었다.

"김 대리, 집에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괜찮아요. 딸이 오늘 유치원 발표회인데... 못 갈 것 같아서."

"그래? 어휴... 나도 그래. 아들 생일인데 야근이라니."

"이번 인원 감축 발표 때문에 다들 난리더라. 평가 잘 받으려고 야근 경쟁이야."

"그러게. 회장님은 뭐 가족이 없으신가..."

"쉿. 그런 소리 하면 안 돼. 어디서 들을지 몰라."

황석진은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저 사람은..." 정희가 말했다. "김영준 대리예요. 당신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사람이에요. 아내와 일곱 살 딸이 있어요."

"..."

"저 사람의 딸 이름은 민아예요. 오늘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해요. 천사 역을 맡았대요.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었는데... 아빠는 못 가요. 당신의 인원 감축 발표 때문에."

황석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장면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작은 아파트였다. 원룸 같은, 낡고 좁은 방.

침대에 노인이 누워 있었다. 심하게 야윈,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

황석진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영철이...!"

맞았다. 박영철. 오십 년 전 자신이 배신한 친구가 저기 누워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했대요."

정희가 말했다.

"폐암 말기예요.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대서...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기로 했어요."

"영철이가... 폐암이라고?"

황석진은 친구의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영철은 눈을 감고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사람..." 정희가 계속했다. "당신한테 배신당한 후에 사업을 다시 시작했어요. 하지만 실패했어요. 그 뒤로 평생 작은 공장에서 일했어요. 힘들게, 어렵게. 하지만 단 한 번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대요."

"뭐...?"

"오히려 당신이 성공하는 걸 보면서 기뻐했대요. '내 친구가 대단하게 됐구나' 하면서요."

황석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어제..." 정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제 이 사람이 당신한테 전화한 거예요. 죽기 전에 한 번만 친구 얼굴 보고 싶어서."

"..."

"당신은 안 갔죠. '내일 가지 뭐' 하면서. 그런데 석진 씨..."

정희가 황석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 사람한테 내일은 없을 수도 있어요."


황석진은 무릎을 꿇었다. 친구의 침대 곁에서.

"영철아... 미안해. 미안해..."

그의 손이 영철의 손을 잡았다. 한때 그 손은 튼튼했다. 함께 기계를 만지고, 함께 땀 흘려 일하던 그 손이 지금은 뼈만 남은 마른 손이 되어 있었다.

"나 때문에... 네 인생이..."

"석진 씨."

정희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게 지금의 당신이에요. 당신이 만든 세상.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직원들의 삶을 짓밟고... 그러면서 돈만 쌓아온 당신."

"정희야..."

"난 당신을 사랑했어요. 평생을. 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했어요? 정말로?"

황석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당신 곁에서 외로웠어요. 큰 집에서,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서... 외로웠어요. 아들 성준이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도 갔는데... 당신은 늘 바빴잖아요."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이제 지겨워요."

정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석진 씨,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요. 아들에게, 손주들에게,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정희의 모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기다려! 정희야, 가지 마!"

"마지막 영혼이 곧 올 거예요. 그 영혼이 보여주는 것을 잘 봐요. 그리고... 선택해요. 당신이 어떤 사람으로 죽을지."

"정희야...!"


황석진은 다시 서재에 있었다.

손에는 아직 정희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정희야..."

그는 사진을 가슴에 안았다.

창밖을 보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오후가 되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영철이...'

그는 갑자기 떠올랐다. 서울대병원. 영철이가 거기 있다고 했다. 아니, 꿈속에서는 퇴원했다고 했지만...

황석진은 휴대폰을 들었다. 영철이의 전화번호는 착신 기록에 남아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렸다.

"여보세요?"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

"저기, 박영철 씨 되십니까?"

"아... 아버지 휴대폰인데요. 저는 딸입니다."

"딸이요? 저는... 박영철 씨의 오래된 친구인데요. 황석진이라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황석진... 회장님이요?"

"네."

"아..."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가... 어제 많이 기다리셨어요. 회장님 오신다고... 밤새 현관문 쳐다보시고..."

"미안합니다. 어제 일이 있어서..."

"아버지 오늘 아침에 의식을 잃으셨어요. 지금... 위중하세요."

황석진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어느 병원입니까."

"서울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이요. 근데... 면회가..."

"지금 갑니다."

황석진은 전화를 끊고 집을 뛰쳐나갔다.


[계속: 제4장. 영철의 마지막 선물]


© 2025 현대판 스쿠루지 - 마지막 크리스마스 | 원작: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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