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님 - 에필로그: 첫눈

2025. 11. 26. 17:31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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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 용서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
글: 내필션(My Necessary Options)



본문

한 달 뒤.

첫눈이 내렸다.

재혁은 차를 몰아 그 동네로 향했다. 서울에서 두 시간. 익숙해진 길이었다.

빵집 앞에 차를 세웠다. 창문 너머로 따뜻한 불빛이 보였다.

딸랑.

"어서 오세요."

순희가 고개를 들었다. 재혁을 보자 환하게 웃었다.

"왔어요."

"네. 왔어요."

재혁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순희가 커피와 단팥빵을 가져왔다.

"오늘 첫눈이에요."

"봤어요. 오는 길에."

두 사람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고 있었다.

"예쁘다."

순희가 말했다.

"네. 예뻐요."


재혁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한 달 전, 아버지가 떠났다. 삼십 년 만에 만나서, 며칠 함께하고, 보냈다.

짧았다. 너무 짧았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용서했으니까. 완전하지는 않아도,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도. 마지막에 편안한 얼굴이었으니까.


"순희씨."

"네?"

"저... 한 달 동안 생각했어요."

순희가 재혁을 바라보았다.

"뭘요?"

"용서가 뭔지."

"..."

"순희씨가 말했잖아요. 용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매일 선택하는 거라고."

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매일 선택했어요."

"어땠어요?"

재혁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떤 날은 쉬웠어요. 아버지 생각하면 그냥 담담하더라고요."

"..."

"어떤 날은 힘들었어요. 갑자기 분노가 올라오고, 왜 이제야 만났나 후회되고."

순희가 조용히 들었다.

"그래도... 계속했어요. 놓으려고. 붙잡지 않으려고."

재혁이 순희를 바라보았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요."

순희가 미소 지었다.

"다행이에요."


"순희씨는요?"

"저요?"

"한 달 동안 어땠어요?"

순희가 잠시 생각했다.

"저도... 비슷해요."

"..."

"창수씨 보내고, 많이 울었어요. 이상하죠? 삼십 년 동안 미워했던 사람인데."

"이상하지 않아요."

"울면서 생각했어요. 아, 이제 정말 끝났구나. 삼십 년이 끝났구나."

순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미소 짓고 있었다.

"홀가분해요. 처음으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하얗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눈.

재혁이 말했다.

"순희씨."

"네?"

"고마워요. 진심으로."

"뭐가요?"

"그냥... 다요. 여기 있어줘서. 이야기 들어줘서. 같이 가줘서."

순희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고마워요. 손님 덕분에 저도 갈 수 있었어요."

"..."

"혼자였으면 평생 못 갔을 거예요."

두 사람이 마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재혁이 일어섰다.

"가볼게요. 날 늦기 전에."

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가요. 눈길 미끄러우니까."

"네."

재혁이 문 앞에서 멈췄다.

"순희씨."

"네?"

"또 올게요."

순희가 웃었다.

"기다릴게요."

딸랑.

문이 닫혔다.


순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재혁의 차가 골목을 빠져나갔다.

눈이 계속 내렸다. 세상이 하얗게 덮여가고 있었다.

순희는 눈을 감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짧은 기도.

그녀는 카운터로 돌아가 내일 만들 빵 재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일도 '고마운 하루'는 문을 연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빵과 커피를 건네기 위해.

누군가의 지친 하루에 작은 쉼터가 되기 위해.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하얗고 깨끗한 눈이 모든 것을 덮었다.

과거의 상처도, 오래된 분노도, 지나간 슬픔도.

그 위에 새로운 것이 시작될 수 있었다.

용서라는 이름의 새로운 계절이.


[에필로그 끝]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 동안, 가장 괴로운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한 선택입니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


내필션 | 삶에도 옵션이 필요합니다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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