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님 - 제10장: 마지막 손님

2025. 11. 26. 17:00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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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 용서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
글: 내필션(My Necessary Options)



본문

며칠이 지났다.

재혁은 매일 아버지를 찾아갔다.

처음엔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삼십 년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그래서 그냥 곁에 있었다. 말없이. 창수가 누워 있으면 옆에 앉아 있었다. 창수가 기침하면 물을 떠다 줬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순희도 매일 빵을 가져왔다.

갓 구운 단팥빵, 크림빵, 식빵. 창수는 많이 먹지 못했지만, 한 입씩 베어 물었다.

"맛있다..."

창수가 말했다.

"옛날에 네가 일하던 제과점 빵 맛이야."

순희가 웃었다.

"거기서 배웠으니까요."

"그때... 네가 크림빵 건네주면 하루가 행복했어."

순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웃고 있었다.

"이제 매일 가져다드릴게요."


어느 날 저녁.

창수가 재혁에게 말했다.

"재혁아."

"네."

"네 회사... 잘 되고 있어?"

재혁은 잠시 놀랐다. 아버지가 자신의 일을 묻다니.

"...네. 잘 돼요."

"다행이다. 네가 혼자 힘으로 일군 거지?"

"네."

창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대단하다. 내 아들."

재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

"미안하다. 아버지 노릇 못 해서."

재혁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이제... 됐어요."


창수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기침이 잦아졌다.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잠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의사가 말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재혁은 알았다.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자주 갔다. 더 오래 있었다.

순희도 마찬가지였다. 빵집 문을 일찍 닫고, 창수 곁에 있었다.

세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말이 없을 때도 있었고, 옛날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창수가 말했다.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며칠이야."

순희와 재혁이 마주 보았다.

"진심이야. 죽기 전에... 이렇게 너희를 볼 수 있다니."

창수가 눈물을 흘렸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그날 밤.

창수가 위독해졌다.

재혁이 달려갔다. 순희도 왔다.

창수는 침대에 누워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눈을 뜨기도 힘들어 보였다.

재혁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창수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재혁아..."

"여기 있어요."

"순희도... 왔어?"

순희가 다가갔다.

"네. 왔어요."

창수가 웃었다. 힘없지만, 평화로운 웃음이었다.

"고맙다... 둘 다..."

"..."

"미안했어... 정말..."

창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제... 갈 것 같아..."

재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버지..."

"재혁아."

"네."

"잘 살아라. 행복하게."

"..."

"너... 좋은 사람이야. 내 아들인 게... 자랑스러워."

재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

창수가 순희를 바라보았다.

"순희야."

"네."

"용서해줘서... 고마워."

순희가 눈물을 흘렸다.

"..."

"덕분에... 편하게 갈 수 있어."

창수가 눈을 감았다.

숨이 느려졌다.

그리고.

멈췄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다.

재혁이 상주를 맡았다. 순희가 곁에서 도왔다. 영자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이 조문을 왔다.

창수의 삶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어떤 후회를 안고 살았는지.

그러나 마지막 며칠.

그는 용서를 받았고, 화해를 했고,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눈을 감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장례가 끝난 뒤.

재혁은 빵집으로 갔다.

딸랑, 종소리.

순희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네."

재혁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처럼.

순희가 커피를 가져왔다. 단팥빵도 함께.

"서비스예요."

"고마워요."

재혁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일 서울로 돌아가요."

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회사 일도 있고."

"..."

"자주 오세요. 빵 맛있으니까."

재혁이 웃었다.

"올게요."

순희도 웃었다.

"기다릴게요."


재혁은 빵을 베어 물었다.

달았다. 따뜻했다.

처음 이 빵집에 왔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모든 게 무거웠다. 분노와 원망과 상처.

지금은.

아직 완전히 가볍지는 않다. 아버지가 떠난 슬픔이 있다. 삼십 년의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

감옥에서 나온 것 같았다. 삼십 년 동안 자신을 가두었던 감옥에서.

용서.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매일 선택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재혁이 일어섰다.

"그럼... 가볼게요."

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가요."

재혁이 문 앞에서 멈췄다.

"순희씨."

"네?"

"고마워요. 진심으로."

순희가 미소 지었다.

"저도요."

재혁이 문을 열었다.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또 올게요."

"기다릴게요."

문이 닫혔다.


순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재혁의 뒷모습이 골목을 걸어 내려갔다.

이상한 인연이었다.

삼십 년 전 자신을 버린 남자의 아들. 그 아들이 자신의 빵집에 찾아왔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순희는 눈을 감았다.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용서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 사람을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재혁씨를 만나게 해주셔서."

눈물이 흘렀다.

"앞으로도... 인도해주세요."


[10장 끝]


📖 다음: 에필로그
한 달 후, 빵집을 다시 찾은 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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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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