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손님 - 제3장: 고마운 하루

2025. 11. 26. 15:26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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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 용서와 화해에 관한 이야기
글: 내필션(My Necessary Options)



본문

순희의 하루는 새벽 네 시에 시작되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도였다.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방 안은 아직 어두웠다. 창밖으로 별이 보였다. 그 고요함 속에서 순희는 입을 열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매일 같은 말로 시작하는 기도. 그러나 매일 조금씩 다른 내용.

"오늘 제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평안을 주세요. 힘든 일이 있는 분들에게 위로를 주세요. 저를 통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순희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삼십 년 동안 빠뜨리지 않은 기도. 차마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기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아직도... 아직도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따라가질 않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순희는 한참 동안 그 자세로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새벽,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할 수 있었다.

용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벽 다섯 시.

순희는 가게로 내려갔다. 빵집은 1층이고, 그녀의 방은 2층이었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주방이 나왔다.

불을 켜고, 앞치마를 두르고, 손을 씻었다. 오늘 만들 빵 목록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식빵, 모닝빵,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 매일 같은 메뉴지만, 매일 같은 정성으로.

밀가루를 계량하고, 이스트를 풀고, 반죽을 시작했다.

반죽은 명상 같은 것이었다. 손바닥으로 밀고, 접고, 다시 밀고. 단순한 동작의 반복. 그 반복 속에서 마음이 정리되었다.

순희는 반죽을 하면서 기도했다.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오늘 이 빵을 먹을 사람들을 위해. 이 빵이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힘이 되기를.


일곱 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고마운 하루.'

이 이름은 순희가 직접 지었다.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연고도, 희망도. 그냥 무작정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이 동네였다.

작은 가게를 얻어 빵집을 열었다. 빵 만드는 법은 젊은 시절 일했던 제과점에서 배웠다. 처음엔 손님이 없었다. 하루에 서너 명. 적자가 이어졌다.

그래도 순희는 문을 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빵을 굽고, 기다렸다.

일 년이 지나자 단골이 생겼다. 이 년이 지나자 입소문이 났다. 지금은 열 년째. '고마운 하루'는 동네에서 제법 알려진 빵집이 되었다.

그런데 순희가 이 동네에 온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순희씨!"

문이 열리며 큰 목소리가 들어왔다. 김영자였다.

쉰셋. 이 동네 통장. 곱슬머리에 큰 목소리, 입이 크고 마음도 큰 여자.

"영자씨,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급해요."

"아이고, 오늘 경로당에서 행사가 있어서. 빵 좀 많이 사가려고."

영자는 진열대를 둘러보며 빵을 골랐다. 모닝빵 열 개, 단팥빵 다섯 개, 크림빵 다섯 개.

"든든하게 드셔야지, 어르신들."

"그러게 말이야. 요즘 창수 어르신이 안 나오시는데, 많이 편찮으신가 봐."

순희의 손이 멈칫했다.

"...창수 어르신이요?"

"응, 이창수 어르신. 산 밑에 혼자 사시는 분. 알지? 가끔 여기도 오시잖아."

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여기 있는 것이다.

"폐암이래. 많이 안 좋으시대."

"..."

"자식이 있다는 말도 있던데, 연락이 안 된다나. 불쌍해서..."

영자가 한숨을 쉬었다. 순희는 빵을 봉투에 담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자식.

그 말이 귀에 걸렸다. 창수에게 자식이 있다. 버리고 간 자식이.


영자가 간 뒤, 순희는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카운터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 햇살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창수.

이창수.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삼십 년 전이었다.


그때 순희는 스물여덟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사회에 나왔다. 공장에서 일하고, 식당에서 일하고, 나중엔 제과점에 취직했다. 빵 만드는 법을 배웠다. 작은 행복이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것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창수. 마흔 중반. 중후한 인상에 부드러운 말투. 그는 제과점 단골이었다. 매일 아침 크림빵 하나를 사갔다. 그러다 순희에게 말을 걸었다.

"빵 굽는 손이 참 예쁘네요."

순희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창수는 자신이 미혼이라고 했다.

사업을 한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번다고 했다. 결혼하자고 했다.

순희는 믿었다. 사랑했으니까.

몇 달 뒤, 순희는 임신했다.

기뻤다. 창수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줘."

그 말을 남기고, 창수는 사라졌다. 하루, 이틀, 일주일.

순희는 그제야 알았다. 그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것을. 자신은 그저 바람 상대였다는 것을.


순희는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작고 빨갛고 예쁜 아기. 순희는 그 아이를 '민준'이라고 불렀다. 혼자 힘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돈이 없었다. 일을 해야 했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작은 방에서 아이와 둘이 살았다. 분유값이 없어 끼니를 굶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준이가 열이 났다. 병원에 데려갔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며칠 뒤, 열이 내리지 않았다. 다시 병원에 갔을 땐 이미 늦었다.

민준이는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떠났다.


순희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이를 묻고 돌아온 날, 그녀는 작은 방에서 벽을 향해 울었다. 끝없이 울었다. 목이 쉬도록 울었다.

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그리고 그 분노는 한 사람을 향했다.

이창수.

그 인간만 아니었으면. 그 인간이 책임을 졌으면. 그 인간이 나를 버리지 않았으면.

순희는 이를 악물었다.

'죽어도 용서 안 해.'


그 후로 삼십 년.

순희는 살아남았다.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일했다. 먹었다. 잤다. 기계처럼. 감정을 죽이고 살았다.

마흔이 넘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음 붙일 곳이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예배를 드리면서, 조금씩 변했다.

용서.

성경은 계속 용서를 말했다. 남을 용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처음엔 화가 났다.

'당신이 뭘 알아? 내가 얼마나 아픈데?'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순희는 깨달았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괴로운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삼십 년 동안 창수를 증오했다. 그 증오는 창수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다. 창수는 자기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순희는 그 증오에 갇혀 살았다. 증오가 감옥이 되어 그녀를 가뒀다.

'내가 용서해야, 내가 자유로워진다.'


오 년 전, 순희는 결심했다.

창수를 찾아가 용서를 전하겠다고.

얼굴을 보고, 말로 전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창수가 사는 곳을 찾아냈고, 이 동네에 빵집을 열었다.

그런데 막상 오니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수의 집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수십 번. 그러다 세월이 흘렀다. 십 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창수가 죽어가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순희씨?"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순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어서 오세요."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늘 그랬듯이. 손님에게 빵을 팔고, 커피를 내리고, 잔돈을 건넸다.

평범한 하루.

그러나 순희의 마음은 평범하지 않았다.

'얼마나 남은 걸까.'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내가 할 수 있을까.'


오후 세 시.

종소리가 울렸다.

순희가 고개를 들었다. 어제 왔던 그 남자였다. 검은 코트의 중년 남자.

"어서 오세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순희는 묻지 않아도 커피를 내렸다. 아메리카노. 어제와 같은.

커피를 들고 창가로 갔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어제 커피는 다 식혔던데, 오늘은 드셔보세요. 맛있으니까."

남자가 순희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눈. 그러나 어제보다 조금... 덜 날카로운 것 같았다.

"...네."

작은 대답. 순희는 미소 짓고 돌아섰다.

'저 사람은 뭘 찾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왠지, 그가 여기 와야 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새벽, 순희의 기도가 끝났을 때 빵집 안 공기가 미세하게 따뜻해졌다.

누군가 그 온기를 느꼈더라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

그녀가 반죽을 치대는 동안,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어깨 위에 가만히 얹혀 있었다.


[3장 끝]


📖 다음 장 예고
제4장: 같은 자리 - 일주일 동안 빵집을 찾는 재혁, 순희와의 짧은 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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